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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원 수업은 어떨까? 첫 학기를 마치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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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원 수업은 어떨까? 첫 학기를 마치며.

시나브로봄 2020. 2. 2. 18:20

지난 10월, 석사과정 입학 후 첫 수업이 떠오른다. 수업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책상에 앉아있었다. 머리속에 떠오른 한 가지 물음. 난 지금 1시간 30분동안 뭘 한 걸까. 6년 전 교환학생 때 들었던 수업은 모두 어학수업이었으므로 학문적 내용의 수업은 처음 경험했던 거다. 멍함과 자괴감으로 점철된 멘붕의 한 학기를 마치며, 독일에서의 대학원 수업 첫학기는 어땠는지 적어보려한다. 학과 내의 유일한 외국인으로서 좌절했던 경험과, 독일 대학원 수업이 대체로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순서대로 정리한다.

 

 

1. 알아듣기라도 하고 싶어요

 

 과제로 내준 페이퍼도 모두 읽어가고 분명 이해했다 생각한 내용이었는데도 수업을 들으니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었다. 이유가 무엇인고하니, 그냥 안 들려서. 못 알아들은거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튀빙겐은 Schwäbischer Dialekt, 즉 방언을 쓴다. 한국에서 배웠던 모든 독일어는 표준독일어(Hoch Deutsch)였고, 뉴스나 기타 인터넷의 학습자료도 모두 표준어 중심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정말 멘붕이었다. 완전히 못 알아듣겠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방금 그게 무슨 단어였지?????'를 생각하다 뒷 내용을 놓쳐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는 단어임에도 억양이나 발음이 다르니 적응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학생들의 발화량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인데, 강의를 하는 교수들은 비교적 명확한 발음과 속도로 말하지만 애들은 아니다. 엄청난 속도와 방언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 말을 못 알아들으니 수업 전반적인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수업의 흐름을 잡지 못하니 흥미도 떨어지게 되고, 무엇보다 점점 자신감이 사그러들어 위축되는 나 자신을 느꼈다. 교수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 밤마다 침대에 누워 천장까지 발차기를 해댔고, '내가 이렇게 멍청했나. 난 공부할 타입이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들이 머리속을 가득 메워 과제를 읽다가 아이패드를 붙잡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첫학기의 마지막 한 달 정도는 교수님이 하는 말도 애들이 하는 말도 모두 이해'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기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문제이지만 그래도 수업 내용이 안 들려 우울한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3개월간 괴로움에 눈물을 쏟으면서도 과제를 놓지 않고, 수업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집중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남은 건 말하기와 쓰기인데...... 내 평생 이 숙제를 완수할 수 있을까가 걱정이다.

 

 

 

2. 외국인의 설움

 

 나는 우리 과, 정확히 말하자면 2019년 입학생 중 유일한 외국인이다. 배우는 내용을 보면 꼭 독일인들에게만 매력적인 내용은 아닌데, 이상하게 인터내셔널 학생이 없다. 나를 제외하고 두 명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더이상 학교에 나오지는 않는단다. 사실상 우리 과에는 나만 외국인인거다. ^^... 교육대학교 전체 OT에서 아시안이 한 명도 없는 걸 보고 처참하다 생각하긴했지만, 정말 인터내셔널 학생이 아예 없을 줄은 몰랐다.

 하여간, 이게 조금 서러운 이유는 인터내셔널 학생들을 위한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아서다. 튀빙엔대학교 자체에서 제공하는 인터내셔널 학생들을 위한 OT가 있기는 하지만 굉장히 피상적인 내용만 알려주는데, (사실 당연하다) 각 학과에서 진행되는 OT에서도 또한 이미 독일식 제도에 익숙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내용만 알려줬다. 당시에는 아는 게 없으니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들었는데,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내게 알려줘야할 것들은 그 이전 단계들이었다. 예를 들면 학점은 어떤 식으로 분배해서 신청해야하는지, 이러이러한 일에는 과의 누구를 찾아가면 되는지, 학점을 최종적으로 받기 위한 시험 신청은 어떻게 하는지, 등등 까막눈일 인터내셔널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그닥. 많이 별로였다. 더욱이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다른 곳과 다르게 모든 대학에서 인터내셔널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요구한다. 매학기 이런저런 비용을 모두 합치면 1700유로 정도를 내는데, 독일 내에서는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인터내셔널 학생을 대우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두번째, 친구 없다. 독일어는 영어보다 훨씬 부족하고 나 스스로도 독일어를 하면서 너무 애같다는 느낌이 들어 아주아주 창피한데, 그래서인지 한국어 발화자일때와 독일어 발화자일때의 나는 현격히 다르다. 아시안걸의 스테레오 타입에 딱 맞는, 말은 없고 수줍게 미소짓는 그런 류의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게 정말 자괴감의 주요 포인트였는데, 그게 싫다보니 더 말을 안하게 되고 말하기 실력은 계속해서 떨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수치심을 버리는 것이지만, 이미 그렇게 하기엔 내 이미지가 샤이한 아시안걸이 되어버렸다. (억울) 동기들 대부분이 현직 교사라 나이도 많은 편이고, 어린 축에 속하는 친구들 역시 교사가 될 애들이라 그런지 대부분 친절한 편이다. 몇몇 친구들은 먼저 다가와주기도 해서 잘 지내고는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친구'가 되기는 힘들었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도 있고 나의 노력여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할 문제이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나의 에너지를 써가면서까지 친구가 되려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라는 마지막 문장은 친절한 동기들을 제외하고 몇몇 독일에 그나마 없던 정도 떨어지게 만드는 애들 때문인데, 나를 앞에 두고 굳이 굳이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던가 한국을 Entwicklungsland(개도국)이라고 칭하는 무례+멍청함의 콜라보가,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감을 애써 줄이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는 건 어느 정도의 지적수준이 있어야 가능한 것임을 안다. 그래서 무례한,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그들의 사고능력 부족으로 받아들이고 털어내는 편인데, 이 사람들이 모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사실은 나를 조금 힘들게 한다. 그이들은 유럽대륙을, 어쩌면 독일땅을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좁은 시각으로 살다가 죽겠지. 그렇지만 그 학생들은 아닐 것인데, 그렇게 배운 아이들은 타지에서 온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길텐데. 이제는 분노를 넘어 슬프다.

 

 

내가 분조장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

 

 

 

3. 수업이 이게 뭐에요?

 

 이게 뭘까. 내가 방금 들은 건 수업이 맞을까. 수업이라면 응당 1, 2, 3번으로 딱딱딱 정리된 PPT를 교수님이 주욱~ 읽어주셔야 수업이 아닌가. 한국의 일방향 소통 중심의 수업에 익숙했던 내게 이 토론식 수업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어색함보다 멘붕에 가까웠달까. 한국에서는 내가 이 수업에서 배워야할 '정보'가 명확했다면, 독일의 수업에서는 상대적으로 정보에 대한 나의 생각과 비판적 관점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강사가 수업자료(보통 학술지나 논문)를 미리 업로드 해두면 이 자료를 읽고 수업에 와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때에 맞게 흐름을 잡아주는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의 답이 꼬리를 물면서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진다. 어느 수업에서건 항상 3-4인의 소그룹을 만들어 1차 토론을 시키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Fragestellung(question)이 있다. 텍스트의 중심내용을 그룹원들과 함께 정리해본 후, "그래서 넌 다 읽고 나서 뭐가 궁금했어?"로 마무리 하는 것이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에만 목표를 두지 않고, 이 텍스트 속에서 어떤 '해석'을 해낼 수 있는지에 훨씬 더 초점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 교육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단연 fragend-entwickelnd(질문하며 발전시켜나가는) 그리고 kritisch denken(비판적 사고)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주고 받으면서 생각을 다듬고 확장시켜나간다. 전공의 특성이 그렇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경험과 생각들로 수업이 꾸려지는 느낌이랄까. 오늘 수업으로 배울 내용이 정해져있는 한국의 수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때에 따라 강사가 몇 가지 질문 이외에는 수업의 '내용'에 대한 발언을 일절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가 가장 난감하다. 교수님, 저는 오늘 뭘 배운건가요. 되묻고 싶어지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유독 그런 특성이 짙은 수업에서, 한 번은 크로아티아에서 온 친구와 수업이 끝난 후 멍하니 앉아 "그래서 결론이 뭐라고?"를 동시에 내뱉은 적도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공부할 땐 내가 알아야하는 '결론'이 항상 정해져있었던 것 같다.(물론 학교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결론은 정해져있다.) 이게 중요하고, 이건 꼭 알아야하고. 받아들여야 할 정보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수업형태에서 개인의 관점이 자라날 공간은 충분치 않았다. 그렇다보니 이곳에서 수업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독일 친구들에 비하여 기본적으로 굉장히 수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주어진 텍스트를 그저 잘 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나와는 달리, 이 친구들은 꼭 '왜?'가 기본 설정값이다. 이 텍스트가 지난 주 어떤 수업과 연관이 되어있고 전체 흐름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배웠던 어떤 이론과 연관시켜볼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그 생각의 범위가 아주 넓고, 수업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들에게 수업의 주제와 내용은 그저 밑바탕에 불과할 뿐, 그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철저히 개인의 몫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업 방식에 나름대로 익숙해진 지금, 이 토론으로 수업이 한결 풍성해짐을 느낀다. 다른 생각을 틀리다고 여기지 않고 경청하며, 생각에 생각을 덧대어 기존의 내용보다 훨씬 더 넓은 내용을 포괄한다. 한 수업이 끝나면 반드시 '생각할거리'가 생기고,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소논문의 주제로 연결된다. 얘네 정말 이렇게 공부하면 수업내용은 절대 안 잊어버리겠구나, 생각하며 나의 지난 학부시절을 돌아본다. 몸이 기억하는 '암기내용'은 남아있지만, 각 수업이 주었어야 할 아이디어는 남아있지 않았던.

 

 

 

4.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점취득방식

 

 이전 글에서 쓰기도 했지만, 독일의 학점분배방식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각 수업에서 자기가 받고 싶은 학점을 학생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수업에서 학점이 과제 3점, 출석 1점, 기말고사 1점으로 이루어져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내가 이 수업이 생각보다 별로고, 크게 중점을 두고 싶지 않다면, 시험 신청기간에 '출석 1점'만 받겠다고 신청하면 된다. 그냥 그게 끝. 이렇게되니 내가 관심있는 분야와 강의에 포커스를 맞춰 공부할 수 있게 된다. 학생들의 결정권과 자율성이 아주아주 많이 보장되는 것이다. 또 한 예를 들자면, 만약 한 수업에서 강사가 제시한 것보다 더 많은 학점을 얻고 싶을 경우 그냥 찾아가서 상의하면 된다. 내가 이 수업에서 얻고자하는 학점이 8점이라면, 강사는 그에 맞는 과제를 내준다. 그럼 그냥 그에 따라서 하면된다. 언제든 해당 결정을 철회할 기회 또한 보장되니,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학점취득제도와 시너지를 이루는 건 평가방식이다. 모든 수업은 절대평가로 이루어지고, 내가 공부한만큼만 성적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한 수업에 7명이 강의를 들어도 A+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있어, 아무리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더라도 나보다 잘한 아이가 있다면 내 점수에 맞는 최종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학생들은 끊임없이 경쟁의 굴레에 빠지고, 시험은 아이들을 가르기 위해 굳이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들을 베베베베베 꼬아서 쓰잘데기없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곳에선 평가가 아예 되지 않는 과제도 있고, 있다 하더라도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엄청난 중압감은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5. 평가가 되는 강의평가

 이런 수업방식이 튀빙겐 대학의 교육방향과도 같다는 것은 강의평가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것도 참 여러모로 신선했다. 학기가 중반부에 진입하면서 매 수업시간마다 강의평가 설문을 진행하는데, 수기로 작성해야하므로 수업시작 전에 설문을 시작한다. 모든 학생들이 설문지 작성을 끝내면, 반드시 수업 참여자 중 한 명이 설문지를 직접 걷어서 종이봉투에 넣어 실링한 후 사인까지 해서(!) 제출한다. 강사가 설문지를 볼 수 없도록 조치하는 것인데, 이것도 신선하다. 그냥 온라인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ㅎ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가끔 귀찮아서 대충 평가했던 지난 날들이 떠올라 이런 아날로그적인 방식도 나름 장점이 많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평가 항목과 질문들을 보니 대학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않지만 아래의 질문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전체 커리큘럼과 수업의 내용이 잘 연계되어있는지

-강사가 토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했는지

-강사는 비판적인 관점과 의견교환에 열려있었는지

-성과 인종, 국적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학생을 대우했는지

다른 교육체계를 겪어온 이방인으로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특징들이 고스란히 질문 속에 녹아있었다. 특별히 학교가 신경쓰고 있는게 어떤 점인지 드러나는 부분이라, 학교 참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더욱 놀랐던 건, 설문의 결과를 학기 후반부에 강사가 직접(!)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강사평가는 이게 평가가 진짜 되는걸까, 이걸 강사가 읽기는 하는건가,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왜? 안 바뀌니까. 솔직하게 평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의는 변하지 않았던 기억이 한 트럭이다. 그러나 모든 수업에서 한결같이, 모든 강사가 결과에 대해서 학생들과 나누고 또 이 결과에 덧붙여 의견을 받는 과정을 거쳤다. 학생들은 정말 솔직하게 개선해야할 점들을 얘기하고, 교수는 가능한 선에서 받아들인다. 심지어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 혹시 독일유학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사실적인 경험공유가 되었으면 한다. 언제나 장밋빛인 것은 아니지만, 사실 매일이 어두운 날들이지만, 아주 작은 성취들로 이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 나쁜 경험도 나쁜게 아니고, 좋은 경험은 그 자체로 좋으니 기쁘지 아니한가~